티스토리 뷰

2015 스터디/1/18 군주론

군주론 외부자료 정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 22. 01:25


-군주론 외부자료 정리-

 

토의 주제:

l  “Virtu”; “Fortuna”; “Necessita”; “Prudenza”

“제대로 된 신생 군주란, 국가를 장악하고 개혁하며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불가피성(네체시타)이 요구하는 과업을 실천적 이성(프루덴차)을 통해 이해하고, 운명의 힘(포르투나)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대신 비르투를 가지고 그 과업을 완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l  징병제

l  급진주의/냉소주의와 공화주의적 관점

l  실용주의

l  호리지성, 호명지심, 임기응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만큼 논쟁적인 책도 드물다는 문장은 진부하다. ‘살인적인 마키아벨리’(셰익스피어), ‘악의 교사’(리오 스트라우스)라는 저주에서공화주의의 대변자’(스피노자·루소)라는 찬양까지, 양극단의 평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군주론>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 더구나 2013년에는 <군주론> 집필 500주년을 기념한 행사(마키아벨리 탄생 500주년이 아니다!)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열려, 마키아벨리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아직 <군주론>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사용해온마키아벨리스트’(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라는 의미)라는 표현를 쓰는 데 머뭇거리게 된 상황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제후국이 난립하고제자백가들이백가쟁명하던 시기였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을 몰아내고 세운 피렌체 공화국의 고위공직자였다가 메디치 가문의 복귀 뒤 반메디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스트라파도라는 모진 고문을 받고 나서 농장에 은둔하며 장작을 만들고 새를 잡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군주론을 집필한,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이다.

(한겨례뉴스)

 

권모술수(權謀術數) (권세 권, 꾀 모, 재주 술, 셈 수):

마키아벨리즘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며 정치적인 책동이나 술책, 임기응변적인 책략 등의 뜻이다. 권력의 획득·유지·증대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결과의 정당성에 의해서 수단이 갖는 반도덕성을 정당화한다는 내용을 가진 일종의 전술개념이다. 권모는 현실정책이나 권력정치의 관념에 비해서 미시적·기술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위키피디아)

 

마키아벨리는 공공의 적?

마키아벨리는 천하의 나쁜 놈으로 알려져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권모술수의 대가로, 이중 플레이의 미덕을 찬양한악의 교사(敎師)’라 규정했고, 어떤 사람은 그를독재자를 위한 지침서를 쓴 사악한 정치 이론가라고 평가한다. 1527년에 사망한 마키아벨리는 죽은 지 40년쯤 지났을 때부터공공의 적으로 규정됐다. 1569년에 이미 그의 이름은 영국에서 발간된 영어사전에 마키아벨리안(Machiavellian)이란 형용사로 등장한다. 영어사전에 등장한 이 신조어에는통치술 전반에서 권모술수를 부리는(Practising duplicity in statecraft in general conduct)’이라는 의미가 부여됐다. 이미 16세기부터 그는 사악함의 대명사가 됐다. 사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지금까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Machiavellian’이란 단어를 찾아보니권모술수에 능한이란 한글 설명이 나온다. 자신의 이름에 이런 부정적인 의미가 부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마키아벨리 본인의 마음이 어떨까? 단테나 미켈란젤로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겠지만 마키아벨리는 씩 웃으며 공연히 딴전을 부렸을 법하다. 마키아벨리에게원조 악당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워싱턴포스트>지의 2011 8월 특집 호에 재미있는 연재 기사가 실렸다. 심리학자 프로이트,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둥, 영국 역사의 황금기를 이뤘던 빅토리아 여왕, 현대 자본주의 경제 이론의 대가 케인스, 피렌체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마키아벨리를 새로운 각도로 분석한 글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름 자체가 모두 형용사로 사용될 만큼 자기 분야를 대표하거나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는 것이다(각각 Freudian, Maoist, Victorian, Keynesian, Machiavellian). 그런데 실제로 이들은 자기 이름이 의미하는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살거나 상이한 사상을 갖고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마키아벨리다. 요컨대 마키아벨리의 이름은권모술수에 능한이란 형용사로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 그의 삶은 전혀마키아벨리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오히려 순진할 정도로 애국적인 인물이었으며 친구들에게 마음씨 좋은 벗으로 남고 싶어 했기 때문에 오히려 친구들이 그의 돈을 상습적으로 떼어먹기까지 했으며 어린 친척이 고아가 됐을 때는 자기 식솔도 잘 돌보지 못하면서 그 아이를 입양해서 호구책을 마련해 주었다. 외교를 담당하는 피렌체 제2서기장의 높은 공직에 있으면서도 공금을 아껴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리에서 쫓겨났을 때조국에 대한 나의 충성심과 공직자로서의 정직함은 내가 가진 가난으로 충분히 증명되고 남음이 있다고 자랑할 만큼 사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전혀 마키아벨리적이지 않았던 마키아벨리가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친 악의 교사(敎師)로 세세 영원토록 지탄을 받게 된 것일까?

그것은 <군주론> 등에서 표현된 마키아벨리의 정치 이론이 강자(强者)들의 눈에 너무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일견 강자를 위한 권력의 조언자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특별한 사람만이 선택되던 피렌체 공화정 정부의 제2서기장으로 일했고 메디치 가문을 위해 <군주론>을 썼기 때문에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처세술을 가르친 것처럼 보인다. 이미 16세기에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기 시작했다. 1569년에 영국에서 출간된 영어사전에 ‘Machiavellian’이란 형용사가 신조어로 등장한 이래 그의 이름은 영국의 희곡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의 작품 속에서 처음 인용됐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말타섬의 유대인>이란 작품(1589)에서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표현된다.

(동아비즈니스리뷰)

 

체사레 보르자는 잔혹하며 아름다운 군주였다. 그는 손님을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는 동안 손님이 독배를 마시며 죽어 가는 모습을 태연히 지켜 보는 사내였다. 이러한 잔인함의 이면에는 이탈리아반도 중부를 통일해 강력한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아름다운 꿈이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그런 체사레 보르자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개의 왕국과 공화국으로 찢겨 전쟁을 반복했다.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로마냐 지방을 지배한 전제군주 체사레 보르자가 이상적으로 보였음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체사레 보르자는 1507년 생을 마감했지만 마키아벨리의 책군주론속에서 아직도 살아 숨쉰다. 마키아벨리가군주론을 탈고한 지 500년하고도 꼬박 1년이 지났다. 지난 세월동안 체사레 보르자는 끊임없이 회자됐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군주상이 세월을 뛰어 넘어 설득력을 가진다는 얘기다.

(비즈니스워치)

 

정치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상주의·도덕주의적 접근이 현실을 도외시하는 정서적 급진주의와 교조주의를 낳았다는 해석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 갈등을 조절하는 현실적 수단으로 정치를 바라본다. 이에 반해 (이상주의·도덕주의에 침윤된) 한국의 정치는 (존재하는) 갈등을 부인하고 (존재하지 않는) 통합을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 갈등 조절에 실패하고, 국민들을 냉소주의나 급진주의로 빠뜨린다. 이상주의·도덕주의의 역설인 셈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가있어야 할 것의 당위가 아니라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바로 이런 현실주의적 접근이야말로 정서적 급진주의와 교조주의에 빠진 한국의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이다.

(한겨례뉴스)

 

급진주의:

현존하는 제도에 대해서 과격하고 즉시적(卽時的)인 변화를 요구하는 정치적 및 사회적 행동과 사상. 대부분의 경우 이 용어는 정치적 행동과 사상에 있어서 극단적인 좌파(左派)의 행동과 사상(마르크스주의자이건 비마르크스주의자이건 간에)을 지칭해 왔다. 점진적이고 온건한 개혁을 비판하는 입장이 「급진적」인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현존하는 제도를 뿌리부터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급진주의의 입장이다. 변화에 대한 태도로 보면 급진주의·자유주의·보수주의·반동주의의 순서로 이해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탈리아 피렌체, 1498년 스물 아홉 살의 청년 마키아벨리가 시의회의 공무원으로 선출되었다. 야심에 가득찬 젊은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흔적부터 지우려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어려움에 처한 피렌체를 구할 해법을 황제가 아니라 시민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로마제국의 공화정에서 찾았다. 로마제국의 황금시대를 타락한 시대로 보았고, 황금시대의 지도자 아우구스투스를 타락한 군주로 여겼다. 로마의 역사를 깊게 연구해온 마키아벨리는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이, 황금시대에 애국심이 부족한 귀족들이 직접 전쟁에 나서지 않고 용병을 고용한 데 있다고 보았다. 로마공화정의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피렌체 정규군을 창설하는 데만 치중한 마키아벨리는 반쪽짜리 부활에 성공하는 데 그쳤다. 로마제국 공화정의 위대한 힘은 시민들이 자신의 명예를 가문의 위대함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실력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데서 얻을 수 있었던 제도에서 비롯되었고 규율이 잘 잡혀 있으며 애국심으로 충만한 로마 시민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 주인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마키아벨리는 실패한 정치가로 남았다. 이후 저술에 매달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비롯, 전술론, 피렌체사, 만드라골라, 클리치아 등의 저작을 남겼다.

살인적인 마키아벨리, 악덕의 스승 같은 말로 혹평을 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화주의의 대변자, 최초의 근대인이자 혁명가로 마키아벨리를 칭송하는 이도 있다. 출간 때부터 논란을 일으킨 [군주론]은 오늘날까지도 지속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독창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덕 영역과 구분되는 정치의 독자성 내지 자율성을 찾은 점에서 최초의 근대철학자에 해당하는 사상가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와 백성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파악했다.

첫째, 백성 모두 이익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이른바 호리지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사회 내지 국가공동체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공공선 내지 공공질서 등을 내세우며 법률 등의 강압조치를 통해 개개인의 '호리지성'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http://blog.naver.com/super760/220164667858)

'2015 스터디 > 1/18 군주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8 문지예 『군주론』을 읽고 느낀 점  (0) 2015.01.25
정소현 생각 정리  (0) 2015.01.24
토론 내용 정리  (0) 2015.01.19
군주론 내용 정리  (0) 2015.01.17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TAG
more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