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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시대: 20세기의 역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1. 1. 22:08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 ()

Eric Hobsbawm

 

20세기 : 개관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우리는 진정한 목격자가 아니다.우리 생존자들은 소수일 뿐만 아니라 이례적인 소수이다.

우리는 발뺌이나 기술이나 운 덕분에, 밑바닥에 닿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고르곤(Gorgon)의 얼굴을 가졌거나 그 얼굴을 보았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거나 말없이 돌아왔다(프리모 레비).”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는 더 나은 것을 위한 혁명들이 일어났고,4신분이 부상했으며,

여성들이 수세기의 억압에서 벗어났다(리타 레비 몬탈치니).”

 

나는 20세기가 인류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세기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윌리엄 골딩).”

 

“20세기를 요약해야 한다면, 그 세기는 인류가 품어온 희망 중 가장 큰 희망을 낳고는

모든 환상과 이상을 파괴해버렸다고 말하겠다(예후디 메뉴인).”

 

우리의 세기는 정의와 평등이라는 이상의 승리가 언제나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유를 어떻게든 유지한다면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전혀 절망할 필요가 없다(레오 발리아니).”

 

역사가들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내게는 20세기가, 20세기를 끊임없이 다시 이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프랑코 벤투리).”

 

15-18

과거의 파괴, 보다 정확히 말해서 한 사람의 당대 경험을 이전 세대들의 경험과 연결시키는 사회적 메커니즘의 파괴는 20세기 말의 가장 특징적이고 가장 섬뜩한 현상들 중 하나이다. 금세기 말의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그들이 사는 시대의 공적인 과거와 어떠한 유기적 관계도 가지지 않는 일종의 영구적인 현재 속에서 성장했다. 이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잊어버리는 것을 기억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 역사가들은 두번째 천년기 말에,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역사가들은 단순한 연대기작가나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사람이나 자료편찬자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일들이 역사가들의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단기 20세기의 전()시기 내지 대부분을 살아온 필자 같은 연령집단에게 이는 불가피하게 자서전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상세히 설명하고 (또한 고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우리는 역사극의 배우-아무리 그 역할이 사소한 것이라 해도-로서, 우리 시대의 관찰자로서, 적지 않게는 우리가 결정적인 사건들이라고 보게 된 것에 의해서 형성된 세기관을 가진 사람으로서 역사에 다양한 방식으로 말려든, 특정한 시간과 장소의 남자와 여자로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20세기의 일부이고, 20세기는 우리의 일부이다.

필자와 세대와 배경이 같은 역사가들에게 과거는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거리와 공공장소의 이름에 유명한 인물과 사거의 이름을 붙였던 세대에 속하고, 강화조약들이 여전히 체결되었고 따라서 그것을 따라야 했던 세대, 전쟁기념비들이 과거를 상기시켰던 세대에 속할 뿐만 아니라, 공적인 사건들이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을 이루기 때문이다. 공적인 사건들은 단순히 우리의 개인적 삶의 이정표일 뿐만 아니라, 사적이든 공적이든 우리의 삶을 형성해온 것이다. 일정한 나이 이상의 막대한 수의 전세계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배경이나 인생행로와 무관하게 동일한 중심적 경험을 겪었다. 이 경험은 어느 정도는 같은 방식으로 우리 모두에게 흔적을 남겼다. 이를테면 우리는, 서로를 배제하는 양자택일물로서의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두 대립물의 견지에서 현대 산업경제를 생각하는 데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이것이 특정한 역사적 맥락의 일부로서만 이해할 수 있는, 자의적이고 어느 정도는 인위적인 구성물이었다는 것이 이제는 분명해져야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쪽이거나 그쪽과 연합했던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침묵을 강요받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한 선 대 악이라는 도덕극에서 의 역할을 맡는 것 외에는 역사와 지적 생활로부터 사실상 밀려났다. 이는 종교전쟁의 세기에 목숨을 부지한 대가로 받는 형벌들 중 하나이다. 불관용이 그 형벌의 주된 특징이다. 20세기를 채워온 종교적인 대결이나 이데올로기적 대결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우리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까지을 주된 임무로 삼는 역사가의 일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해를 방해하는 것은 우리의 열정적 신념뿐만 아니라 그 신념을 형성해온 역사적 경험이다. 어쨌든 이 비범한 세기를 겪어온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판단을 삼가지는 않을 것 같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9세기 문명

경제: 자본주의적/ , 입헌적 구조: 자유주의/ 계급: 부르주아

과학, 지식, 교육의 진전과 물질적, 정신적 진보를 자랑

그 문명의 주요 국가들이 세계 정치체계를 구성

cf. 장기 19세기(1780-1914)

혁명의 시대(1789-1848), 자본의 시대(1848-1875), 제국의 시대(1875-1914)

 

단기 20세기

1914-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파국의 시대

25-30년간의 엄청난 경제성장과 사회적 변화: 일종의 황금시대

1970년대 초 이후: 해체, 불확실성, 위기의 새로운 시대

 

- 파국의 시대: 근대 제국주의의 역사 종말, 세계 경제위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일시적(파시즘에 맞서) 동맹이 민주주의를 구함. 역사적 역설의 시기.

ex. 히틀러에 대한 소련의 승리는 10월 혁명으로 수립된 체제의 성과. 자본주의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10월 혁명의 가장 지속적인 결과전쟁에서나 평화에서나는 민주주의를 구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의 적대자들에게 자극과 공포를 줌으로써 그들 자신을 개혁시키고, 경제계획의 인기를 확립하여 그들에게 개혁절차들 중 일부를 제공해줌으로써)

- 황금시대: 자본주의는 어떻게 전례 없는 황금시대로 급진전했는가? 20세기 역사에 미친 주된 영향이 될 것. ‘역사의 종말이 아닌, 인류의 압도적 다수가 먹을 것을 지배하고 가축을 돌보며 살아간 긴 시대, 즉 석기시대의 농업 발명으로 시작된 인류사 7,000-8,000년의 종말. 이에 반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의 역사는 보편적이고 장기적 관점(황금시대-위기의 시대와 같이 시대적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에서 중요성이 덜 할 것. 왜냐하면 이 시기에 비로소 초국가적으로 기능하고 따라서 국가 이데올로기의 경계들을 넘어 기능하는, 단일하고 갈수록 통합되고 보편적인 세계 경제가 역사상 처음으로 창출되었기 때문.

- 위기의 시대: 위와 같은 흐름의 결과로 모든 체제들과 체계들의 기존 제도개념이 손상됨.

1970년대의 난관은 일시적 경제 약진의 중단이 아닌 장기적 위기: 경제적 위기

황금시대에 해결했다고 생각했던 문제들대량실업, 주기적 불황의 발생. 여러 방면에서의 양극화 등. 급진적 해결책 추구하였으나, 초기자유방임주의 역시 실패. 이 때 사회주의 역시 자본주의 세계와 같거나 훨씬 더한 정도로 자신의 과거와 근본적인 단절을 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이후 단기 20세기의 끝을 표시하는 붕괴를 향하여 나아감.

세계의 한 부분의 붕괴는 나머지 부분의 침체를 드러냈다: 정치적 위기

1980년대가 1990년대로 넘어오자, 세계적 위기는 경제적 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전반적.

공산주의체제 붕괴는 혼돈은 지대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 체계를 파괴했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국제적 체계의 안정에 의존해왔던 국내 정치체제들의 불안정성을 확대시킴. 선진국역시 교란된 경제로 인해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잠식. 이러한 압박은 제3세계에서 작동한 모든 정치체제의 토대도 잠식시킴. -> 기본적 정치단위들(영토적 주권적 독립적 국민국가)이 초국가적 경제의 힘, 분리주의적 지역 및 소수민족 집단 국가 내적인 힘에 의해 파토남.

더 명백한 것은 1950년 이후 인간생활의 격변을 반영하는: 사회적, 정신적 위기

근대사회의 신념과 가정(假定)의 위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공유했던 합리주의적, 휴머니즘적 가정. 그러나 양쪽 다 난파를 당했다(Bergedorf, 1993).”

 

"인류에게 이득을 주었다는 주장의 유일한 근거가, 과학과 기술에 기초한 물질적 진보의 거대한 승리였던 시대는 역설적이게도, 서구에서 사상가를 자임하는 사람들과 여론집단의 상당수가 그러한 승리를 거부하는 것으로 끝났다. " 26

 

이는 가정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역사적 구조의 위기; 근대사회가 전산업적, 전자본주의적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역사적 구조는 그 사회가 기능할 수 있도록 해왔으나, 이제 외부인을 정의하는 것 말고는 집단의 정체성을 정의할 수 없음. 이러한 위기는 사회를 조직하는 한 형태의 위기가 아니라 모든 형태의 위기. (ex. 실체가 불확실한 시민사회’, ‘공동체에 대한 기묘한 요구)

 

"시인 T. S. 엘리엇에 따르면, “세상이 끝나는 소리는 쾅 하는 소리가 아니라 흐느끼는 소리이다.” 단기 20세기는 두 소리를 다 내며 끝났다."  27

 

1990년대의 세계는 어떠한가?

- 양적 변화: 인구 증가(1914년의 세 배인 50-60억 명), 대량사망자 수 역시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빈곤의 해소와 분배의 확대(그러나 세기 말 불평등의 우세), 교육의 확대로 인한 문맹감소, 혁명적이고 끊임없이 진보하는 기술; 운송과 통신의 혁명. 그러나 점철된 전쟁; 규모와 빈도와 길이, 역사상 최대 기근에서 조직적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진보라고 자신했던 수준에서 눈에 띄게 퇴보. “20세기 동안에 전쟁들은 갈수록 국가들의 경제와 기간시설을 파괴하고 민간인들을 공격하는 양상으로 수행되어왔다.”

- 질적 변화:

탈 유럽중심적: 유럽의 쇠퇴와 몰락, 그러나 완전한 몰락했다는 인상은 피상적(‘미국의 세기’; 급부상한 미국은 여러 가지 독특한 점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확대된 유럽, ‘서구문명으로 파악할 수 있음)

초국가적: 1914년에서 1990년대 초 사이에 지구는 훨씬 더 단일한 작동단위가 되었다. 특히 경제적인 면. 지구는 제1의 작동단위로, 국민경제와 같은 오래된 단위들은 초국가적 활동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로 전락. 20세기 말의 두드러지는 특징; 세계화 과정은 갈수록 빨라지는데 공적 제도와 인간들의 집단적 행동 둘 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함. 그러나 인간의 사적행동은 어려움이 덜 함(TV, 메일, 해외여행 등).

cf. ‘지구촌이라는 말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Macluhan, 1962).

연결고리의 단절: 오래된 유형의 사회적 관계들의 해체, 세대간(과거와 현재 간) 연결고리의 단절. 특히 서구형 자본주의의 가장 선진적인 나라들에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의 가치관이 공식적, 비공식적 이데올로기를 모두 지배. 사실 혁명의 시대 이래 줄곧 이러한 사회적 유대의 해체를 실제로 예측했으나, 그 새로운 사회는 낡은 사회의 유산을 무차별로 파괴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용도에 맞게 선택적으로 개조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영구적으로 계속해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다.

 

자본주의는 자신이 걸터앉은 가지들 중 적어도 하나를 톱으로 자르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세기 중엽 이래 줄곧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황금시대와 그 이후의 엄청난 경제적 폭발의 충격으로 가지가 금이 가고 부러지기 시작했다. 현재 속의 과거를 포함해서 과거가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린 세상, 개별적, 집단적으로 사람들을 일생 동안 안내해온 이전의 지도와 해도가 우리가 움직이는 곳의 풍경과 우리가 항해하는 바다를 더 이상 나타내지 않는 세상, 우리가 어디로 여행하고 있는지 모르며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조차 모르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아는 것이 금세기 말에 처음으로 가능해졌다. 미래는 더욱 낫고, 더욱 정의로우며, 더욱 활력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자. ()세기는 좋게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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