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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을 읽고, 신의와 이야기하고, 오늘 또 우주와 인간사회에 대한 토론을 하며 끊임없이 맴돈 의문은, 왜 우리는 현실 속에서 당위를 추구하며 사는가?였다.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오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보았다.

우리는 왜 현실 속에서 당위를 추구하며 살아가는가? 그것은 결국 셀 수도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는 탄생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현실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만, 당위는 우리의 역사시간이 사라질 때 까지 함께 남아있는 까닭이다. 현실에서 당위를 추구하는 것은 당장의 먹고사는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살아남는 것은 결국 우리의 생각, 곧 정신(精神)이다. 육신은 생명체의 한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정신을 남김으로써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영혼이 아닐까? 우리가 특별하다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의 초월성이다. 우리의 존재가 단 한 번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세에 기억되어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그만큼 오래 살아남아 향유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가장 큰 힘은 가장 큰 약점으로부터 비롯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이 세상에 오래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이자 본능이 우리의 지적 호기심에 불을 붙이고, 특별한 자아를 찾게 하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게 한다.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현실 속에서 당위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개인 스스로가 가치를 느끼는, 혹은 후세에도 널리 인정받을 수 있는)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행복한 삶의 추구는 또 다른 문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침 읽고 있던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보면 생각은 더욱 복잡해진다. 루소는 인간이 당위를 추구하는 것이 본래 동물이 감성적인 존재여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인상깊은 부분을 추려보았다.

 

머리말

나는 인간의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유용하면서도 가장 뒤떨어져 있는 것이 바로 인간에 관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글 하나("너 자신을 알라")가 지금껏 인간성을 탐구한 사람들의 모든 두툼한 책들보다 중요하고 쉽지 않은 교훈을 담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인류의 모든 진보가 인간을 끊임없이 원시 상태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할수록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획득하는 수단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을 연구했기 때문에 인간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자연권droit naturel의 참된 정의가 그만큼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자연법에 대해 논의한 저자들 사이에서 거의 의견 일치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놀라움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로마의 법학자들은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자연법에 묶어놓는다. 그들은 자연법이라는 것을 자연이 다른 제삼자에게 명하는 법칙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연이 자연 자신에게 부과하는 법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법학자들이 '법Loi'이라는 말에 부여하고 있는 특수한 의미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경우 그들은 법이라는 말을 주로 자연이 생물의 공동의 보전을 위해 모든 생물들 사이에 확립하고 있는 일반적인 관계를 나타낸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근대의 법학자들은 법이라는 이름 아래 도덕적인 존재, 즉 지적이고 자유로우며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고찰되는 존재에 부과되는 규칙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자연법의 적용 범위는 이성을 부여받은 유일한 동물인 인간에게 국한되었다.

자연이 무엇인지 거의 모르고 또한 법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서도 거의 일치를 보지 못했으므로, 자연법의 정확한 정의에 합의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그러므로 인간을 이미 완성된 모습으로 보는 방법만을 가르쳐주는 학술 서적을 제쳐두고 인간 영혼의 최초이자 가장 단순한 작용들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기에 이성보다 앞선 두 개의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의 안락과 자기 보존에 대해 스스로 큰 관심을 갖는다는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감성적 존재, 주로 우리동포가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낀다는 원리이다. 사회성의 원리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자연법의 모든 규칙들은 우리의 정신이 이 두 가지 원리 사이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치와 조합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그러므로 우리가 철학자를 인간으로 만들기 전에 인간을 철학자로 만들 필요는 전혀 없다. 타인에 대한 의무를 지혜의 가르침으로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다.…동물도 타고난 감성에 의해 어느 정도 우리의 본성과 관련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들도 자연법에 관여하며 인간은 그들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내가 동포에게 어떤 종류의 해도 입혀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동포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감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 같은 특질은 동물과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므로, 적어도 동물은 인간에 의해 불필요하게 학대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ㅜㅜ 졸리네여 일욜 전까지 더 추가할게요! 다들 나중에 이책 꼭 읽어보세요 ㅋㅋ흥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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